Q : 이번에는 이전 YG의 취재에서 들을 수 없었던 것을 중심으로 듣고 싶습니다, 우선, 당신이 중심이 되고 있는 BRC(블랙·록·콜리션)라고 하는 조직에 대해 알려주겠어요?

A: OK! 우선, 원래는 매우 비공식적이고 이상한 분위기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내 친구 중 몇 명은 그야말로 올리인드를 연주하고, 섹션은  훌륭하지만, 아무래도 손님이 오지않는, 이것은 이상하다고 느끼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러 젊은 뮤지션만으로 오머 하킴이나 마커스 밀러라든지 그 안에 있었지만, 그렇게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에, 모두가 「너의 음악에는 시장성이 없다」라고 말해진 경험이 있는 것을 알았다. 연주는 훌륭한데 왜  세상에서

인정받을 녀석이  1명도 없을 까?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어서  조직을 결성하게 되었다. 우선은 로컬로 하는 느낌이었지만 ….  재즈나 블루스를 연주하고 있는 녀석도 있어 반드시 락음악을 연주하는  그룹이 아니었다.

그때 우리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비즈니스면에서의 너무 힘들다라는 것인데 , 결국 많은 무리가 너무 음악 비즈니스에 대해서 무지였기 때문에 네. 그런 계기로 시작한 거지. 그리고 콘서트의 기획이라든지 업계 전문가들에게 의뢰하기도 했다. 그것은 우선 연대 의식과 희망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Q: 너가 대표자라고 할까, 사장인가?
A: 몇 명의 임원같은 녀석들도 있고 난 사장이지만, 투어에 나와 있는 기간도 길고, 실제 운영관리라든지 결단은 상무이사 같은 느낌으로 변호사 돈 에버슨에게 맡기고 있다.

Q : 이야기는 리빙 컬러의 일로 옮기는데, 가사나 사운드면에서 매우 강렬한 독창성을 느끼고, 특히 가사에 대해서는 문제 의식을 강하게 갖게 한 내용의 물건도 있고, 리빙 컬러 혹은 버논 자신의 록에 대해서 어떻게 인지하는지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A: 많은 사람은, 리듬만이 음악이라고 하는 의식을 락에 대해 가지고 있지만, 스타디움이지만 클럽이겠지만, 사람들을 사로잡고 하나로 하는 파워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배경이라는 견해도 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U2나 포이즌도 각각 이런 파워를 가지고 있었고, 나 자신도 그러한 파워적인 영향을 받았다. 

Q : 이전 인터뷰에서도 솔로 파트는 악보 등에 얽매이지 않는 임프로비제이션에서 연주한다고 들었는데, 
A:인프로비제이션하는 에너지는  물론, 그 곡이나, 드럼이나 베이스의 어프로치에 의한 곳이 큰 이유이지만, 그것을 증폭시키는 분류되지 않은 프리·폼 감각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디펑트나, 프리 재즈계 뮤지션과의 접촉이 많고, 또 나 자신도 프리 재즈 출신의 기타리스트이기 때문에, 그 편이 기초가 되어 임프로비제이션을 취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뭐, 클래식을 근거로 하는 사람도 있으면, 재즈를 근간으로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Q: 이것도 전회 조금 접했지만, 인터벌 스킵이라든가, 오픈 펜타토닉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거지?
A: 인터발 스킵은 이렇게  현을 넘어 플레이한다. 오픈 펜타토닉에 대해서는 이렇게, 예를 들어 Am이라면 믹솔리디언처럼 B나 Ab에 크로매틱으로 원스텝씩 상하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긴장과 이완을 잘 만들어낼 수 있다. 콜트레인 따위는 이렇게 보통의 마이너 펜타토닉을 점점 크로매틱으로 옮겨가는 패턴을 잘 사용하고 있다. 

Q : 버논 자신, 프리 재즈 출신이라는 것과 로널드 샤논 잭슨과 플레이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넷 콜맨, J.B. 울머 등이 실천하고 있던 하모로딕 (리듬이나 하모니, 템포는 각각 독립적으로 멜로디를 구성하는 등의 이론)
A: 기본적으로 별로 연구한 적은 없지만, 그것은 예를 들어, 라디오를 듣고 있고, 거기에 다른 라디오국의 음악을 듣고 있는 녀석의 차가, 가까워져 왔다고 한다. 그러자 그 두 음악이 자신이라는 필터를 통과함으로써 다른 제3 음악이 자신 안에 완성된다는 것이다. 뭐, 나의 경우는, 그렇게 설명되어 「과연, 그러한 음악도 존재하지 말라」라고 이해한 이유이지만, 오넷은, 한때 드럼 2명, 베이스 2명, 기타 2명이라고 하는 즉, 2개의 트리오에 별도의 곡을 플레이시켜, 그 중간에 서서 플레이하고 있었던 적이 있다. 방금 말한 라디오와 같은 조건으로 플레이하고 있던 이유.

Q : 지난 회의 인터뷰에서 재즈 선생님에 대해 기타를 가르친 것 같은 말을 했는데 오른손의 피킹 폼은 그 때 외우게된  폼인가?
A: 아니, 어느 쪽이라든가 자연스럽게 익힌 느낌이야. 옛날에는 보통 스타일로 피킹했지만 지금과 같은 스타일로 바꾸는 것으로 근육은 더 많이 사용하지만 더 빨리 연주할 수 있다. 다만, 처음에는 정확성이 부족하지만 ..... 얼터네이트 픽킹도 스스로 응집한 것과 마찬가지로, 레슨을 받았을 무렵은, 확실히 선생님에게도 픽킹 폼에 대해서는 추천했지. 하지만 결국은 나는 팔이 작기 때문에(?), 처음, 현의 굵은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에  현은, 011~.0 49인가.050의 세트를 사용하고 있다. 감각으로서는 완전히 재즈 기타야. 옛날에는 울트라 라이트 게이지를 사용했지만, 지금처럼 록식의 트레몰로 유닛은 없었고, 튜닝이 맞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더 굵은 현을 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해 .010 세트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언제였는지 잘못해서 .011로부터의 세트를 쳐버렸다. 그래서, 그 소리에 쏟아져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음질이 어떻다고 하는 일이 아니고, 연주하기 쉽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

Q : 그리고, 장비적인 면에서, 클린 사운드도, 디스토션 사운드도, ADA의 MP-1을 중심으로 소리 만들고 있습니까?
A: 맞아.  부기의 쿼드 프리 앰프와  400 파워 앰프에 통과시켜 사용하고 있다. ADA에서는 디스토션을 가득 걸고 있는데, 12AX7 튜브(진공관)를 메릴랜드에 살고 커스텀 튜브를 만드는 남자가 만들어준 물건으로 바꿨다. 

Q : 고장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그것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A: 그런 사람도 있지. 나도  2대째를 사용하고 있지만, 1대째는 위험했다. 하지만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은 전혀 문제 없어.


집에 수북히 쌓여있는 영기타를 다시 보게 되면 묘한 기분이 든다.

당시에는 악보쪼가리를 보면서 카피할려고 애를 썼었다.  가장 싫었던 기사가  인터뷰나 기재 소개부분의 기사인데

요즘은 오랜만에 그 잡지를 보면 그 인터뷰 부분이 재미있다..  아니... 아니 이게 이런 비하인드였어???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다.  오로지 이런 잡지만 발행이 되었는데 영기타는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하다

어떻게 거물이 될것을 한번에 알아보고 이런 인터뷰까지 했었는지...  이 인터뷰는 89년도에 존페트치가

20살이었을때의 지면 한페이지 분량의 인터뷰인데..  그는 자신의 음악이 성공할것을 확신하고 있었던것이 아닐까?

오늘은 오랜만에 1집이나 들어봐야겠다. 

 

 

 

어떤시대에도 사람들과 다른 독자성을 가진 밴드가 있습니다. 그게 우연히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게 되면, 
건즈 앤 로지스처럼, 딱! 한 장의 앨범만으로 세계를 제패하는 것이지.
여기에 소개할 뉴 그룹, 드림 시어터도 그런 가능성을 지닌 밴드. 건즈때도 그랬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의외로 아날로그 처럼 들리지만,  몇 번인가 듣다 보면 그 본질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주목해야할 밴드입니다!

드림·시어터··정말 간단하지만 독특한 깊이를 가진 이름이다. 뉴욕주의 롱아일랜드를 거처로 하는 이 5인조는, 오늘의 록·씬이 완전히 망각해 버린 깊이가 있는 치밀한 사운드를 무기로 하고 있는데, 그것을 '70년대의 프로그레시브·하드·록과는 색다른 표현의 방법을 하고 있는 점이 매우 현대적인 것이다. 그래서 기타리스트 존 페트루치 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 보기로 했습니다.

[저와 키보드 플레이어의 케빈 무어, 그리고 베이스의 존명은 소꿉친구로 옛날부터 함께 밴드를 하곤 했는데, 저와 베이스인 존이 버클리에 진학하면서
거기서 드러머 마이크 포토노이와 만났어요. 거기서 우리는 트리오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학교가 보스턴이었기 때문에, 이 시대는 보스턴을 거점으로 했었는데,
케빈과는 계속 연락을 하다가 학교가 방학하면 4명이서  작곡하거나 리허설하고 했어요. 이 멤버로 4곡이 들어간 데모 테이프를 제작했는데, 이것이 상당히 평판이 좋아져서요,
'86년의 일이었지만, 그 당시 보컬리스트를 넣기도 하고, 인스트로만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형태를 바꾸면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형태로 정리된 것은 87년에 보컬 찰리 도미니시가 가입하면서부터입니다]

멤버의 3명이 무려 그 버클리 출신이라는 것도 있어서, 그 테크닉은 경이롭기조차 하지만, 그만큼 끝나지 않은 점이 이 드림 시어터의 매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러시 등과 비교할 수 있는 부분을 아주 좋은 밸런스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영국 밴드가 많습니다. 예스, 핑크 플로이드, 그리고 마릴리온... 프로그레시브 록은 전반적으로 아주 좋아해요. 그리고 더 헤비한 것이라면 아이언 메이든, 러쉬, 드렉스 정도. 러쉬의 '2112' 뭔가 나에게는 아직도 바이블같은 것이니까요(웃음)]

그리고 그들은 그 러쉬를 키워낸 프로듀서 테리 브라운과 일을 했습니다.

[싱글용 곡을 2곡 리믹스 받았어"스테이터스 시커"와 "애프터 라이브"를 말이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와는 아직 만난 적이 없어서, 우리가 뉴욕에 갔을 때 그는 캐나다에 있어서 전화로 이야기를 했을 뿐이지만,앞으로 할 녹음에는 꼭 프로듀서로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앨범을 프로듀싱해 준 테리 데이토도 아주 편했지만, 그는 소위 프로듀서적인 일은 하지 않았거든요. 그가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곡의 어레인지는 끝났었고요. 그는 단지 우리에게 각 파트를 어떻게 연주하는 것이 더 나아질지를 지시해 주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곡을 쓴 본인이 가장 잘 그 곡에 대해 알고 있을 테니까, 프로듀서가 스튜디오에 들어가고 나서 곡의 어레인지 등에 참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음악 마켓은 미국 메인이 되는 미디어가 잡지이고, 그 다음에 TV나 라디오가 됩니다. 그래서 좋은 소개를 받으면 사람들은 크게 주목하는데, 미국처럼 라디오나 TV가 미디어의 중심이 되면 드림 시어터 같은 그룹은 단지 각각의 곡이 길다는 것만으로 미디어로부터 무시당하게 됩니다.

[정말 곤란한 문제지요. 우리 뭔가 딱 그 맞는 느낌이거든요. 세상에는여러가지 음악이존재하고,그것을 여러가지 형태로 사람들에게 소개해나가는것이 미디어의 일인데, 좀처럼 그렇게는 되지 않지요...그것은 음악 팬의 대부분이 변함없는 패키지 음악을 지지하는 데서 기인하고 있는데, 어쨌든 어려운 문제지요]

드림 시어터는 기존 장르나 음악유통에서 원하는 상품에서는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단 그들이 만든 것이 인정되면, 그들은 슈퍼 그룹으로서 부동의 지위를 확립할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만든 곡이 무려 모음곡으로 20분이나 돼요. 빨리 일본 사람들이 들어줬으면 좋겠어요...미국 라디오에서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반드시 걸리지 않을 테니까 (웃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싱글로서 히트할 가능성이 있는 곡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그룹의 싱글보다는 다소 좋은 소개를 받으면 사람들은 크게 주목하는데, 미국처럼 라디오나 TV가 미디어의 중심이 되면 드림 시어터 같은 그룹은 단지 각각의 곡이 길다는 것만으로 미디어로부터 무시당하게 됩니다.]

[정말 곤란한 문제지. 우리들은 처음부터 그런 벽에 부딪혀 있는 느낌이니까요. 세상에는 여러가지 음악이존재하고,그것을 여러가지형태로 사람들에게 소개해나가는것이 미디어의일인데, 좀처럼 그렇게는 되지 않는걸········길어질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멜로디를 쓸 수 있다면, 다소의 길이는 단점이 된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니까요. 좋은 곡을 쓰는 포인트는 자기 자신이 영향을 받아온 것을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해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왜 자신이 그것에 매료되는지를 생각해 본다····그러면,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는 망설이지 말고 노력만 있는 거지. 나머지는 연주가로서의 자신과 작곡가로서의 자신의 균형을 잘 맞추는 거라구. 이것만 주의하면 좋은 곡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라고 마지막으로 정리해준 존. 도저히 1969년생의 20살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미국의 뮤직 미디어조차 바꾸어 버릴 것 같은 에너지를 가진 드림 시어터. 그때까지 우리는 따뜻하게 그들을 지지해 나가고 싶습니다.

 

 

●하루에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을 생각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매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일 뿐이야. 신제품의 개발이나 생산관리, 제품에 대한 오더라는 이처럼 비즈니스계라면 당연한 일뿐이지. 있잖아. 나는 공장내에 살고있고, 큰방에 위성텔레비전과 목욕시설을 설치해서 생활하고 있지.

 나의 스케줄은 꽤 이상하지.  20시에는 취침하고 23시에 일어나 1시간 작업하고는 다시 1시간 잠을 자는 듯한 느낌이 새벽 5시까지 계속된다. 거기서 겨우 잠이 깨는 거야. 주말은 롱· 아일랜드 끝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 보트를 타고 낚시하러 나가고 있어.

 ●당신이 현재, 직접 관련되어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나는 이제 개인적으로 빅머프를 미세 조정한다 것 말고는 설계에 관여할 일은 없어져 버렸어. 우리에게는 몇 명의 훌륭한 디자이너가 있으니까. 내가 대대적으로 관여하는 건, 다음에 어떤 제품의 설계에 착수할지 논의할 때. 만약 잘못된 제품을 골라 버리면, 팔리지 않으니 결국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쏟아 붓는 것일까 아무튼, 지금도 많은 히트제품을 만들고 있어 시장에 유례가 없는 독특한 제품 를 만들어낼 자신은 있어.

 ●최근 기타 기자재는 디지털 지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엘레하모에서는 "디지털"에 대해서 어느정도
 의 거리를 두고 있습니까? 

○우리는 양쪽 모두를 아주 좋아한다. 빅히트가 된 제품이 많아. 아날로그라면 빅·머프는 매월 수천 대나 팔리고 있고, 디지털도 뒤떨어지지 않고 많이 팔리고 있지. 신작 Superego라든가, POG2라든가. 하지만 디지털이라고 해서 차갑고 무미건조한 것을 내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야. 따뜻한 느낌 하는 사운드를 디자인하기 위한 노하우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래서 완전히 디지털을 거절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날로그와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네.

 ● 어느 제품이나 이름이 독특해서 흥미를 끌지만, 모두 당신이 이름을 짓고 있습니까?

○대부분은 내 머리에 떠올랐던 거야. 예를 들어 스몰 클론은 처음에는 77년경 클론 시어리라는 이름으로 출시해 그 파생으로 이름이 붙었다. 대부분은 내가 생각하지만, 가끔은 아이디어를 말해주는 사람도 있고, 내가 마음에 들면 그걸 쓰게 해줘.

 ●빅 머프의 '머프' 이름의 유래는?
 ○차음(muffle)시킨듯한 사운드여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지.  디스토션 사운드를  낡은 스피커에 울렸을때 생기는, 차음재로 처리한 것 같은 사운드가 마음에 들어서"머프"라는 이름을 붙였지.

 ●일을 하면서 당신이 존경하는 인물이란?
 ○일렉트로 하모닉스에서 일해 주고 있어 있는 모든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어. 제조라인의 테크니션들, 유통 담당자, 자재 조달, 공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항상 생각한다. 기타 플레이어로 존경 물려받은 사람들이네. 펑키, 더티, 소울풀한 사운드엔 끌려서 할 수 있어. 그래그래, 나는 애당초 기타리스트가 아니야 정말 키보디스트였어. 가 좋아하는 뮤지션은 윌슨 피켓이라던가, '트위스트 앤 샤우트'를 발표한 초기의 아이즐레 브라더스라고 하는, 몸을 움직여서 발장단을 치게 하는 음악을 만들었던 사람들이라네...

 ● 당신이 키보디스트였던 것은 기타 이펙터 제작에 있어 특별한 관점을 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음, 어떨까? 내가 기타리스트였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네(웃음). 그런데 나는 5살 때부터 물건을 파는 것에 관심이 있었어. 물론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배워, 뮤지션으로서도 플레이하고 있었지만, 기업가가 나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시장에 내보내야 할 제품이 어느 것인지 알아내는 것에는 항상 자신이 있었지.

 ●엘레하모의 이펙터는 케이스의 아트웍이 매력적인데, 구상시에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 페달 상단부를 구상할때  '아트 워크는 재능이 넘치는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맡기고 있으며, 최근 10년의 디자인은 모두 앤서니라는 사람 남자가 담당하고 있어.

 ● 또한, 케이스의 크기에 대해서 신경쓰시는 부분이 있습니까? 
 ○신제품을 계획할 때는, 이미 표준이 된 3종류의 사이즈 중 어느 하나에 들어가도록 설계하고 있고. 이렇게 함으로써 제조의 간략화가 되고 공정이 추가되지도 않으니까.

 ●당신이 부하에게 요구하는 엔지니어상이란?
 ○좋은 귀를 가졌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그들의 상상력은 풍부해서 놀라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신제품 개발 말고는 거리를 두고있고, 젊은 엔지니어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내도록 하고 거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어떤 제품을 내놓는다 결정하는데 있어서 어떤 기능을 갖게 할 것인가 까지 입니다 다 판단했지만 지금은 기본적인 기능만 에게 의견을 내고 나머지는 엔지니어들에게 맡긴다 하기로 했어. 가끔은 참견하지만!

 ●사운드 면에서의 구애받는 점을 들려주세요. 엘리하모다운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중시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계속 말하고 있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리에 대한 철학은 일본의 메이커와는 달라. 예를 들면, 일본의 메이커의 대부분은 저잡음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요. 하지만 그에 따라, 이펙트로서 중요한 고주파대도 없애버리고, 필링이 없어져 버렸어. 반면, 우리는 그 밸런스를 잃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뮤지션이 연주해서 제대로 느낄수 있는 이펙트를 소중히 하고 있어. 연주하다 보면 알아차릴까 어느 정도의 노이즈 속에는, 뮤지션이 느끼는 무언가를 포함한 고주파대가 있다. 그게 더 연주를 좋게 만들어주는 거야.

 ● 그 밖에도 있습니까?
 ○ 컨트롤, 노브의 레인지를 극단적인 곳까지 도달하는 설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인 최대치라고 여겨지는 것을 넘는 근처에서, 기묘하고 새로운 사운드가 나와. 그걸 좋아하는 뮤지션은 있을 거야. 많은 경쟁 메이커는 그런 곳을 없애 버리고, 무난한 레인지 폭으로 가변역을 넓게 하고 있을 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러면 안 돼.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뮤지션을 한층 더 다른 차원으로 내디디게 하는거지.

 ●사진에서 봤는데 당신은 탱크탑에 반바지 차림으로 일을 하고 있었네요(웃음). 회사 내에서도 항상 자유로운 모습을 하고 있나요?
 ○이 공장 안에서는 모두 캐주얼한 차림으로 일하고 있어. 내가 마지막으로 넥타이를 맨 거야 은 3년전, 누군가의 결혼식인가 뭔가였다고 생각해 ㅋㅋ。

 ● 그런데, 엘레하모의 오리지널 9V 전지에 당신이 찍혀 있지요. 어떤 계기로 당신이 프린트 된것이죠?
 ○이건 부산물 같은 거야. 우리는 세계 최대의 기타·앰프용 진공관 제조 공장을 러시아에 소유하고 있어 펜더, 메사·부기, 그 외 다수의 메이커에 공급을 행하고 있지. 그 공장은 2006년과 2008년 현지 두 개의 큰 갱단에 납치될 뻔하자 법적 다툼이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우린 승리했고, 그때 찍은 사진이 배터리의 컷이야(웃음). 참고로 이 배터리는 망간이야. 많은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알칼리 전지보다 망간 전지 쪽이 사운드가 좋다고 해서 그걸 개별적으로 판매하기로 했어. 일본에는 조지·아즈마가 대량으로 매입해 주고 있네.

 ●양을 닮은 신비로운 엘레하모 엠블럼 이 신경이 쓰이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 것입니까?
 ○몇몇사람들이양의얼굴이라고불러주는데,이것은사람의얼굴이야. 그것도 우연히 태어난 것도 그래서 회사를 시작한 68년 10월쯤, 나는 맨해튼의 작은 아파트에서 작업하고 있었어 하지만, 고용한 작업원이나 아티스트와의 파티로 방의 벽을 페인트칠해 버렸어. 당시는 히피한 시대였으니까. 그 벽에 가득 찬 그림중에서  우연히 그 얼굴이 있어서, "LPB-1"을 만들었을 때에 세상에 주목받기 위해서 프린트 해 보았다 거 말이야. 그러면 그게 이 회사의 로고로 유명해진 거야.

 ●당신에게 유명한 기타리스트로부터  주문이 온적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중에서 어려웠던 리퀘스트는 있습니까?
 ○많이 있었지만, 거의 잊어버렸지 뭐야(웃음).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어. 8년 전 NAMM 쇼에서 한 기타리스트가 내 부스에 찾아와 주었다. 나는 그를 전혀 몰랐지만, 나중에 그가 존 풀 시안테라고 들었어. 레드 핫 칠리페퍼스의 기타리스트라고 들어서 이제야 알았네. 그는 "마이크, 당신을 다시 만나서 너무 기뻐요. 당신에게는 큰 은혜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하는거야 . "무슨 소리야?"라고 되물었더니, "제가 아직 12살 때 기타 선생님과 악기쇼에 왔을 때, 누구도 저에게  악기를 만지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만 당신만은 악기를 만질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죠."고 답했다. 그래서 그는 무상으로 이틀 동안 Electro-Harmonix Holy Grail(리버브)의 데모 비디오를 만들어 주더라. 

 ●멋진 에피소드네요.
 ○그런 이야기는 많이 있었지만, 스타 플레이어로부터 접수된 요청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기억이 잘 안나. 유명하지 않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도 요청할 자격이 있는 법이지. 자신이 원하는 페달이 있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내도 좋다고 생각해. 회사에서도 그래.

 ●그럼 마지막으로, 엘레하모의 페달을 객관적으로 보고, 그 매력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제품으론 불가능, 완전히 새로운 일로 도전할 수 있는 일이네. POG2는 폴리포닉· 인풋이 있어서 최대 상하 2옥타브의 소리를 블렌딩하는 것이 가능하고, 트래킹은 완벽해. Superego는 소리를 정지시키는 기능이 있는데다 이펙트 루프를 탑재하고 있어, 뮤지션이 독자적인 이펙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

 


YG : 우선 앨범 '블루 신디케이트'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만, 전작 '더 드림 레이크'와 마찬가지로 보컬과 인스트가 반으로 녹음되어 있지요? 이것은 녹음 전부터 결정한 것 무엇입니까?

타마스 세카레슈(이하 TS): 아, 맞아. '더 드림 레이크'는 3년 전, 그리고 이 '블루 신디케이트'는 작년 레코딩했지만, 모두 보컬 곡과 악기를 반반씩 녹음하려고 하고 있었다. 음악성도 연결이 있고. 실은, 헝가리 국내에서는 그 2작의 사이에 「기타 히츠」가 릴리스 되었지



YG : 전작과는 드러머가 다른 것 같습니다만, 보다 타이트하게 되어 밴드로서 정리된 것 같은 느낌이군요?
TS: 그말을 들으니 기쁘네  다만, 그들과는  같이 연주한것은 아니고  아니고, 정식 형태로 「나의 밴드 멤버로서 활동해 주었으면 한다」라고 말한 것은 한 번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내 곡에 우선 순위가 있고, 솔로 프로젝트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하지만, 솔로 기타리스트라고 하는 이미지보다는, 나 자신도 제대로 한 밴드는 붙잡고 싶은 기분도 있다. 전작에서는 네덜란드인의 리듬대를 고용해 레코딩했는데, 헝가리에서 1,500㎞나 떨어져 있고 리허설을 할 때마다 굉장히 고생했어. 하지만 이번에는 헝가리인의 리듬대를 초대했기 때문에 활동도 원활해졌다.

 

YG: 전체적으로 전작보다 키보드의 비율이 늘어나, 팝 색이 증가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만···?
TS: 어떨까···. 그것은 외부의 프로듀서 하나를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전작에서는 헤븐스 게이트의 사샤 피트에 힘을 빌려 주었지만, 이번에는 모두 스스로 작업을 진행했다. 그래서 음악성이나 사운드를 바꾸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고, 최선을 다하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었다는 느낌이야(웃음).

YG : 특히 보컬 송은 가수의 에드윈 바로크의 노래 방법이 전작과 비교하면 소프트가 되어, 「솔저 오브 타임」등은 스티브 페리나 데이비드 커버 데일을 방불케 하는군요 ?

TS : 그건 감격이야. 나는 그런 가수가 좋아한다. 보스턴이나 저니 등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기호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데이비드 카바데일을 닮았다고 에드윈에게 말하면 감격해. 

YG : 인스트 넘버의 「셔플 오버 버추어」나 「블루 신디케이트」는 현대적인 부분과 고전적인 부분이 훌륭하게 융합되어 있어, 당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스트레이트하게 표현한 것 같은 노래라고 생각하십니까?

TS: 맞아. 이 2곡은 바로 우리다운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부터 이런 대작에 임하고 있었어. '89년에 '기타 매니아'를 발매한 이래 조금씩 악기로의 접근도 변화해 왔고, 내 안에서 “기타·인스트는 이렇게 있어야 한다”는 이미지가 분명해져 왔어 라고 생각한다.

 YG : 전작에서 그렉 하우의 커버에 이어 이번에도 스티브 루카서의 「히어로 위즈 사우전드 아이즈」와 토니 멕켈파인의 「휠 오브 포춘」을 커버하고 있습니다. , 이 2곡을 커버 하려고 생각한 이유는?

TS : 클래식 한 기타리스트로서 항상 다른 연자를  연구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카피해서 실력을 연마하여  자신의 스타일을 확립해 왔다. 덕분에 지금은 수백곡을 카피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모은 것이 커버 곡만을 레코딩하고, '기타 히츠'를 릴리즈 했지 블루신디게이트 에서는 오리지널 곡에 맞는 커버 1곡을 수록하려고 생각해 이 2곡을 선택했지만, 특히 토니의 「휠 오브 포츄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굉장했다.」 을 듣는 순간에, 이 곡념이 뒤덮여 있다는 기분이었어. 지금까지의 기타 인스트의 대략 그리고 또 한 곡은, 처음에는 지미 헨드릭스를 커버-하려고 앨범을 체크하고 있었지만, 이 앨범에 맞는 스타일의 것이 보이지 않고, 그래서 루카서의 곡으로 한 것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어(웃음).

 YG : 그리고 마우로 줄리아니 작곡에 의한 본격적인 클래식 기타 넘버 "에튜드 오퍼스 48 / No.5"가 수록되어 있습니까?
TS : '기타 매니아'에서도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작품을 꼽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만큼 열심히 클래식곡을 연구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휠 오브 포춘"에 들어가기 전의 일종의 서곡(오버츄어)으로서 이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YG : 앨범 라이너에  줄리아니의 악보가 찍혀 있습니다.
TS: 아니, 머리 속에서 "이렇겠지"라고 상상하면서 플레이했을 뿐이야. 실은, 저것은 줄리아 12의 보면이 아니고, 내가 손에 넣은 낡은 노트 19세기의 앤티크인 것 같지만, 소책자용의 사진에는 쿨하다고 생각해서. 

YG : 그럼 앨범 '기타 히츠'입니다만, 기타 인스트의 커버만을 수록한 앨범을 만들려고 생각한 계기는?
TS: 클래식 음악만큼이나? 트릭 기타를 주체로 한 현대 작품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 잉베이 맘스틴도 블루스 사라세도 현대에 있어서 위대한 작곡가이며, 클래식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플레이어가 새로운 해석을 더해 계승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유. 비브라토라든가, 플레이어의 버릇은 기타리스트에 따라 다르고, 클래식 음악의 팬이 다른 오케스트라로 다른 지휘자의 같은 작품을 콘서트 홀에 몇번이나 듣고 행 <감각과 비슷하지 않을까. 연주가나 지휘자에 ​​의해서, 그 표현은 완전히 다른 번역이니까.

 

YG : 솔로까지 포함하여 거의 오리지널에 충실하게 플레이하고 있습니다만, 악보를 보셨습니까?
TS : 아니, 그렇지 않아. 왜냐하면, 세상에 나돌고 있는 악보나 탭보는, 포지션이 틀려있는 경우가 많아서 


YG: 비교적 최근 기타리스트의 커버뿐이지만, 어떤 기준으로 곡을 선택했나요?

 TS: 기본적으로는 내가 좋아했던 곡을 선택했어요. 하지만 앨범 1장을 나누는 것으로, 스타일적으로도 다양성이 없어야 했기 때문에, 각 플레이어의 제일 좋아하는 곡을 꼽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인 취향을 반영하면 전곡 발라드가 되어 버리니까요! 처럼 배려했을 거야. 실은, 이미 「기타 히츠」시리즈의 제2탄을 레코딩하기 시작했지만, 그럼 게리 무어의 「더 로너」, 토니 마카파인의 「챔피언」, 스티브 루카서의 「송 "포 제프", 그리고 조 사트리아니의 "클라인"등을 커버하고 있어.

 

YG : 잘 알려지지 않은 제미 래리츠의 노래를 커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TS: '90년에 친구로부터 그의 앨범을 선물받았어. 그 친구라고 하는 것은 업계의 인간이지만, 그에게 연락을 해 보면, 내 앨범에 게스트 참가해 주게 되어. 그 답례는 아니지만, 이 앨범의 구상이 실현되게 되어 그의 곡을 꼽기로 했다. 그는 정말 놀라운 플레이어이지. 지금도 제미가 내놓은 퍼스트 앨범은 최고의 기타 인스트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플레이함으로써, 그의 팬이  한사람이라도 늘어나면 좋겠어.

YG : 각자 스타일이 다른 기타리스트이므로 뉘앙스를 모방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만, 플레이가 특히 어려웠던 곡은?
TS: 어렵다고 느낀 것은 에릭 존슨일까. 게다가 브루스 살라세노와  조새트리아니도 내가 추적해온 스타일과는 다르고, 스스로는 절대로 떠오르지 않는 프레이에 임할 수 있어 의미가 있었어. 자신의 가능성의 수평선이 다시 펼쳐진 것 같다(웃음). 어느 곡도 녹음하고 있어 즐거웠고, 타인의 곡이지만 지금은 굉장히 애착이 솟아있다.

YG : 반대로 플레이하기 쉬웠던 노래는?
TS: '아이스 프린세스'는 낙승이었어요 (웃음). 그리고 잉베이맘스틴과  스티브 바이도 내 스타일과 굉장히 비슷했고, 송 라이터로서도 아이디어를  맞추어가는 방법이 굉장히 알기 쉬웠네요.

YG : 각 기타리스트의 사운드에 맞게 기타와 앰프를 선택 했습니까?
TS: 아니, 기본적으로는 같은 세팅이었어요. 그렇지만, 곡의 분위기에 자신의 플레이가 좌우되는 것 같고, 톤도 자연스럽게 변화해 갔다. 굳이 장비를 바꾸지 않아도 여기까지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좋은 견본이라고 생각해. 물론 톤 컨트롤을 유지하거나 디스토션의 양을 늘리거나 줄이는 일은 했지만 오리지널 톤까지 흉내내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플레이하고 있는 음표는 함께라도,어디까지나 자신의 개성을 내야 하기 때문에. 

 

YG : '기타 히츠'시리즈를 출시하면서도 당연히 오리지널 앨범을 제작해 나가는 거죠?
TS: 그래. 「기타 히츠」의 제2탄이 완성되면, 또 오리지널 곡을 쓰기 시작할게. 그렇지만, 여름에 유럽을 투어할 예정이 있기 때문에, 다니는 것은 가을 이후가 될 것이다. 이번 알밤은 전곡 인스트루멘탈로 하려고 하고 있다. 집에 디지털 장비를 갖추었으니 이번부터 집에서 녹음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는 계속 시간과의 싸움으로, 너무 다시 하거나 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덧붙여서 「기타 히츠」시리즈의 제3탄은 잉베이·말무스틴의 곡만으로 구성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YG의 독자로 어떤 곡으로 해야 할지 생각하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꼭 가르쳐주세요! (웃음)  사용 이펙터를 알려주실래요?

TS: 둘 다 기본적으로 같은 장비를 사용했어. 프리 앰프는 마샬의 JMP-1과 메사 부기 1의 트라이 액시스로, 파워 앰프는 휴게스 & 케트너의 CF-200과 마샬의 9100. 기타 1에 관해서는 샤벨의 SAN DIMAS가 메인으로, 그 밖에는 깁슨의 레스폴이나 나이트 호크, 펜더의 스트라트등도 사용했다.

 

 


■최신 싱글 [Secret Night~It's My Treat~]를 처음 들었을 때, 갑자기 느낌이 바뀌어 있던 것에 놀랐습니다.왜 이 곡을 싱글로 선택했나요?

 

시바사키 히로시(이하 S): 언제나 새로운 부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세계가 끝날 때까지는…」를 내고 다음 스텝으로 갈 때에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좀처럼 그에 맞는 곡이 없어서, 싱글을 내는 데 시간이 걸려 버렸습니다.그때 우에스기(WANDS의 보컬리스트)가 "이런 곡이 있는데"라고.다 같이 들어보니까 특히 A멜로, B멜로의 멜로디의 느낌이나 이런 게 자기들이 기분 좋아지는 음악에 가까웠으니까.비교적 이번에는 CD를 낼 때까지 공백이 있고, 그 동안 멤버끼리 여러가지 대화를 하고 서로 하고 싶은 것을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에, 기타를 넣을 때도 나름대로의 접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곡을 싱글로 내는 것에, 불안함은 없었습니까?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불경같은 멜로디"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역시 불안했지만, 과감한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와) 같은 것을 하고 있어도 재미가 없고

 

■스스로도 "갑자기 너무 많이 바꿨나"라고 생각했습니까?

 

어떨까… 단지, 그런것을 해서 어느 정도,  사람들이 공감해 줄 것인가, 라고 하는 내기 같은 부분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그렇지만,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주변에서  뭐라고 말해도 결과물에 대해서는 만족한다라는?.

 

그렇죠.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이후 밴드 사운드가 더 강해졌죠?아까 들은 4집 수록 예정곡도 과거 앨범과는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이것은 라이브를 포함한 여러 가지 경험에 의해 생긴 의식적 변화입니까?

 

자신의 기타 플레이에 대해서 말하자면 데뷔부터 지금까지를 되돌아 보면, 처음에는 비교적 스튜디오·뮤지션적인 어프로치라고 할까, 아마추어가 들어도 알 수 없는 세세한 백킹이나 더빙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어레인지적 발상이 강해서 주장 같은 것이 희미했던 것이 아닐까요.어디까지나 노래의 서포트적인 역할이라고 할까요…….그것이 멤버의 영향이나 자신의 음악적 기호가 바뀌어서, 최근에는 저런 기타 플레이가 되었습니다.

 

■작곡도  전에 발매된 음악은  AOR같은 어프로치의 곡이 많았습니다만, 점점 무거운 록 같은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네요.


WANDS 자체가 아마추어에서 같이 온 밴드는 아니었고, 아직 세상이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왠지 모르게 눈치를 보고 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근데 작년에 라이브를 해보고, 역시 "자기들이 연기한다"라는 것이 대전제에 있으니까, 자기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소리를 망설이지 않고 해보자는 생각이 강해져서요.어레인지에 대해서, 우에스기도 지금까지 이상으로 "스네어도 2.4가 아니라 림으로 조용히 가는 느낌"이라든가 아이디어를 내고 있습니다.곡도 이번에는 처음부터 리프가 있어서 이런 게 많았죠.

■시바사키상은 , 기타 솔로를 만드는데  시간을 들이는 타입? 아니면 영감만으로 뚝딱 끝내는 타입인가요?


시간을 들이는 타입. 우선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테이프를 돌려 보지만, 몇 테이크인가 해 보고 그것을 다시 듣고 내 안에서 방향성을 정해서 하거나 하고 있습니다.단, 짧은 시간에 빨리 끝내는 타입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처음 2~3회의 테이크라는 것은 흐름이 원활하거나 하기 때문에 절대로 끄지 않도록 하고, 졸리면 또 그것을 듣고 "이게 흐름이 좋다"라든가. 하지만, 역시 세세한 부분이 신경 쓰이기 때문에, 꽤 여러 번 하는데(웃음)


■기타 솔로는 기타리스트에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기에  더욱 신경 쓰고있나요?

 

음, 누구에게 들려도 부끄럽지 않은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것은 있습니다.뮤지션이 아닌 사람에게도, 뮤지션에게도.기타나 음악 같은 것을 별로 모르는 사람, 연주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도, 제대로 도착하는 플레이라고나 할까…….최근에는 뭔가가 꽂히는 듯한 플레이를 조심하고 있습니다.

 

■ 기타는 곡과 프레이즈에  따라 꽤 나누어 사용하고 있습니까?

 

상당히 유용한  기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는 그것 하나로 하고 있습니다만, 레코딩 후반에서는 트랙마다 바꾸기도 했습니다.


■리프와 배킹은 다른 기타로?

 

앰프나 이펙트나 셋팅이 다르지만, 같은 기타.

 

■메인 기타는 몇 개 가지고 있습니까?

 

메인은 1대입니다.

 

■예? 1대뿐입니까?
자신이 "이렇게 치고 싶다"라고 생각했을 때 바로 반응해 주는 기타가 아니면 싫으니까…… 그렇게 되면 사람과 사귀는 것과 함께 나름대로 익숙함이 필요하고.


■지금, 합계 몇 개의 기타를 가지고 있습니까?

 

일렉트릭으로 5개 정도.그리고 일렉트릭의 줄(기타)과 일렉트릭의 스틸 현을 1개씩.

 

■메인 기타는 어느 메이커입니까?
Art Tech 해서, 한 명의 기타 빌더가 만들고 있는 커스텀 메이드 브랜드의 기타입니다.꽤 많은 프로 뮤지션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디부터 픽업까지 신경 쓴 기타군요.

 

사용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최근 얼마간은 같은 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이 커스텀 메이드에도 옛날부터 익숙해져 있는 것을 붙이고 있습니다.

 

■별로 신제품에 눈이 쏠리지 않는 편입니까?

 

최근에는 여러가지 시도도 하고있지만...역시 익숙해져있는 것이 제일이려나.

■그런데, 중학생 때는 어떤 음악을 들었습니까?

 

속칭 뉴뮤직이라고 불리는 음악입니다.오프코스라든가 안전지대라든가.

 

■서양 음악으로는?

 

중학교때는 아직, 서양음악에는 눈을 뜨지 못했네요.제가 중학교 2학년 때는 다들 서양음악을 듣기 시작할 때잖아요, 듀란듀란이라든가 컬처클럽이라든가.저는 그런 거에 별로 관심을 안 보이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 왜요?

 

단지, 뭔가 제대로 오지않았다고나 할까요....(웃음)

 

■그것은, 언어의 문제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가?어렸을 때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역시 언어를 모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자주 친구 앞에서 노래하거나 했습니까?

 

집에서 자주 불렀었어요(웃음). 아이니까, 그 당시 히트했던 가요라든가…….

 

■예를 들면?

 

음……크리스탈 킹이라던가, 마츠야마 치하루라던가 .부모님이 음악을 좋아해서 2~3살쯤부터 동요를 들었고, 항상 음악이 나오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기타는 독학인가요?

 

유치원때, 조금 배웠지만, 밖에서 친구가 야구를 하는 것이 보이면 아무래도 침착하지 않아서 3개월만에 그만두어(웃음). 소년 야구팀에 소속되어, 쇼트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중학교에서도 야구부였습니까?

 

아니요, 테니스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바뀌었네요(웃음)

 

더운 날씨에 지키고 있을 때 한가한 것이 싫어져서(웃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그 점, 테니스라면 계속 치고 있을 수 있잖아요?

 

■(웃음) "꿈은 야구선수!"가 아니었습니다.

 

역시 아이니까, 그건 있었어요.친구가 이사갈 때는 "고시엔에서 만나자"고 말하기도 하고요.결국,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들어버렸지만(웃음)

 

■음악을 시작한 것은 언제쯤입니까?

 

중학교 3학년 때 반 친구들과 밴드를 짜고 보컬과 키보드를 하고 있었거든요.

 

■아, 노래하고 있었습니까?무슨 카피를?

 

알피라든가 오프코스라든가 뉴뮤직 계열.그 밴드는 졸업하면 끝났는데 고등학교에서도 1학년 선배랑 그런 음악을 하는 밴드를 만들자고 해서요.그 선배도 보컬이랑 키보드 하는 사람이었거든요.사실 중학교 3학년 때 시시한 이유로 (웃음) 포크 기타를 시작해서 코드 체인지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선배가 "키보드는 두 명도 필요 없으니까 기타 칠 수 있으면 기타를 해"라고 해서.뭐, 기타도 싫어하지 않으니까 괜찮겠지, 라고.

 

■그럼 기타를 손에 주게된 는 계기가 된 " 시시한 이유"란(웃음)?

 

누나가 스기야마 키요타카의 피아노 연주 악보를 부탁해서 사러 갔는데, 그것이 기타 연주 악보였어요(웃음). 돌아오는 전차 안에서 주법등을 읽고 있는 사이에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즉시 사준 것이 시작.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기타로 전향해서 밴드를 짰는데 그때 TV에서 라우드니스를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얼마나 멋있을까요?

 

■하드락이라는 것이 말입니까?

 

맞아요. 디스토션이 전면에 나온 사운드. 그때까지 그런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모르는 것을 보았다는 느낌으로.역시 다감한 시기라고 할까 사춘기에 받은 충격은 인생이 바뀔 정도로 두고두고 꼬리를 잡네요.

 

■타카사키 아키라(라우드니스의 기타리스트)에게 영향으로   록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일렉 기타 자체에 대한 충격과 매력과 하드 록 사운드와.그 무렵(라우드니스는) 미국의 레코드 회사……확실히 애틀랜틱과 계약했다든가 해서, 꽤 화제가 되고 있어….

 

■그렇다면 '썬더 인 디 이스트' 무렵입니까?

 

 맞아, 「크레이지 나이트」라든가.

 

■아, "라우드니스는 몰라도 그 리프만은 알고 있다"는 말까지 듣는 명곡이네요.
맞아. 일렉기타가 없어서 다음날 친구에게 일렉기타와 앰프를 빌려와서 연주했어요.이미 들은 느낌이 맞았는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웃음)

■처음으로 스스로 일렉 기타를 산 것은?

 

고등학교 1학년 7월이나 8월이나 여름이었지요.흔히 볼 수 있는 그레코 레스폴의 카피 모델로, 검은색에 미러 픽 가드, 켈러 암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 암이 달린 레스폴입니까? 특이하네요.다카사키 씨가 가지고 있던 기타가 암 부착이었기 때문에, 암 부착으로 한 것입니까?

 

아니요, 그건 단지 암이 붙어있는 편이 여러가지를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서요.그리고 외모가 멋있었기 때문입니다.

 

■ 물론, 즉시 라우드니스를 카피해…….

 

그리고, 바우와우, 도켄이나 나이트 레인저, 랫트나, 영기타에서 다루어진 밴드를.악보도 실려 있었고 빼놓지 않고 읽고 있었네요.

 

■처음으로 완곡한  카피곡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역시 '크레이지 나이트'

 

■시간을 많이 들였나요?

 

어땠을까요?맞아, 우선은 옛날에 했던 오프 코스의 조금 어려운 듯한 문구를 카피해 "손가락이 움직이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하고 나서, 정말 좋아하는 (웃음) 라우드니스를 쳐 보면 이전보다 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과연, 그런 연습법입니까? 대부분  처음에 카피하는 곡은  리치 블랙모어가 많지요.딥파블의 '하이웨이 스타' 이런 거...

 

아, '하이웨이 스타'도 했었지. 고등학교에서는 반의 절반 정도가 악기를 하고 있어서, 여러가지 정보를 교환하거나 즐거웠습니다.기타 치는 놈의 집에 놀러 가서 모르는 곡을 연주하고 있다고 가르쳐 주기도 하고요.

 

■음반 사서 연습한거죠?

 

실은, 아날로그 레코드는 산 적이 없어요.오로지 친구가 더빙해달라고(웃음). 나머지는 렌탈레코드를 마구 빌렸습니다.테이프는 200개 정도는 있었나요?

 

■그 당시의 애청반은?

 

나이트 레인저의 2nd '미드나잇 매드니스'.'록 인 아메리카'가 오프닝에 들어가 있어서, 역시 그 기타 솔로는 카피할 수 없었네(웃음). 저런 에이트 핑거는 아직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웃음)

 

■피킹으로 승부하는군요(웃음). 밴드에서 하드락을 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쯤입니까?

 

고등학교 1학년때는 아직 밴드 같은 것이 아니라, 단지 함께 소리를 내고 싶은 것 뿐입니다.드럼의 녀석이 비교적 소리를 낼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었고, 그 녀석의 집에 몰려와 하고 있었습니다.

 

■ 차고 같은 데서?

 

그것이 꽤 강제적인것인데(웃음).  방에 드럼이 놓여져 있고, 작은 앰프로  기타를 쳤읍니다. 스테이지에 선 것은 언제일까…… 고1이나 2년의 문화제였던가.메이크업도 하고 바우와우 같은 밴드의 곡을 하고 그랬었어요  바우와우는 (스펠링이) "B"일때보다 "V"일때가 멋있어서 좋아했습니다.당시의 아이돌은 야마모토 쿄지(바우와우의 기타리스트)였지만…….

 

■네? 타카사키 아키라가 아니라?

 

가 아니라 (웃음)

 

■왜 타카사키 아키라가 아니라 야마모토 쿄지에게 끌렸습니까?

 

그것도 텔레비전이었지만(웃음), 당시 NHK에서 「베스트 사운드」라고 하는 프로그램에 난바 히로유키(센스 오브 원더의 키보디스트)와 함께 나와 있어, 하드·록이지만 어딘가 지적인 부분도 있어서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카피할때는  시간을 잊고 홀린 것처럼 되어 있었습니다.불도 켜둔채로 기타를 끌어안고 잠들기도 (웃음)

 

■당시는 오로지 카피에 몰두했겠지요.
카피를 할 때는 시간을 잊고, 홀린 것처럼 되어 있었습니다.근데 신기하게 복사를 해서 고생했다거나 이런 건 기억이 안 나요.

 

■ 그야말로 기타에만 전념한 날들이네요

.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는 마작이 유행해서, 고등학생인데  마작하러 다니거나  찻집에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는게  시간이 아까워서, 빨리 기타를 치고 싶어서 빨리 돌아갔습니다."너 그렇게 일찍 들어가서 뭐하는 거니?"  "기타 치는 거야" "우와" 이런 느낌.집에 가는 길에 어딘가에 들른다면 리허설 스튜디오 또는 악기 가게였습니다.

 

■어디어디가셨어요?

 

 대부분  오차노 미즈입니다.악기점인 디스크 유니온에 들르는 것이 단골 코스였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면 방에서 헤드폰을 끼고 묵묵히 기타를 치는군요.

 

헤드폰 없이 제대로 앰프도 울리며 연습하고 있었습니다.부모님께 혼나면, 조금 볼륨을 낮추거나 하면서(웃음). 야마모토 쿄지라든가 조지 린치(도켄의 기타리스트)라든가 워렌 드 마티니(랫의 기타리스트)라든가 제이크 이 리(전 오지 오스본 밴드, 버트런즈의 기타리스트)라든가 카피했죠.고등학교 3학년쯤 되면 토니 맥칼파인(퓨전의 요소를 도입한 록 기타리스트) 근처도 했고요.

 

■토니 맥칼파인이요? 하드락과는 다르네요.

 

점점, 하드·록을 좋아한다기보다는, 흥미가 기타 그 자체로 바뀌었기 때문에, 스퀘어 같은 것도 했고….

 

■경음악부에  가입했었나요?

경음악부에 가입은 하지 않았어요

뭔가 연습을 많이 안 하고 시간이 가는 게 아깝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고등학교 2학년 정도에는 자기들끼리 (오차노미즈에 있는 ) 미야지 악기의 홀이나 시민 회관을 빌려서,  콘서트도 했습니다.의리로 티켓을 사달라고 해서, 머리를 이렇게 세워버리거나 하고 말이야(웃음)

 

■커버곡을 시바사키 씨가 부른?

 

오리지널이 1곡있었나?노래는 중학교까지고, 이미 기타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그 곡은 누가 썼습니까?

 

그것은 자신이.음악 이론적인 것도 알고 싶어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악기 가게에서 그런 책을 서서 읽었습니다.그렇지만, 실제로 곡을 만들 때는 무시하고 있었지만(웃음). 나머지는 통신 교육으로 「싱어송라이터 코스」같은 것을 해 보거나…….

 

■그때는 어떤 곡을 썼습니까?
하드 록. 우연히 연주하다가 생각난 리프 같은 것이 있어서, 멜로디 같은 것은 굉장히 적당하고, 자신만 즐거우면 좋겠다고 하는 세계였지만(웃음). 완벽하게 기타를 위해서만 만든 곡(웃음).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쯤에는 4ch의 MTR을 사와서, 스스로 백킹·패턴이나 드럼을 녹음해, 기타·솔로를 만들어 놀았습니다.

 

■그 당시에도 레스폴 했었나요?

 

고등학교 3학년 때 던컨의 스트라토 타입의 기타를 샀거든요.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직접 샀습니다.아르바이트비는 전부 기재에 쏟아 부어서요.

 

■밴드를 몇 개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떤 것을 하고 있었습니까?
도켄과 라우드니스, 오지 오스본, 바우와우 등의 카피 밴드.바우와우는 키보드가 없어서 별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 누나를 억지로 끌어내기도 하고(웃음)

 

 

YG : 신작 '기타 키텍처'는 몇 곡에 대사가 들어있는데 컨셉 앨범과 같은 제작이 되어 있지만, 뭔가 테마가 있나?
롭 존슨(이하 RJ): 실은, 그 대사는 몇개의 영화로부터 가져온것이고. 상당히 웃기고, 앨범이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기타 키텍처'앨범의 시작 부분은 음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학생들은 일렉트릭 기타라고 대답한다.
대부분의 아이가 일렉트릭 기타를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 앨범의 테마는 앨범 제목인것이지.
'기타 키텍처'가 가리키는 대로 모든 종류의 기타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기타 앨범이라고 하는 것이다.


YG : 악기에 타이틀을 붙이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각 곡의 이미지에 맞는 타이틀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RJ : 확실히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간단하게 떠오르를때도 있다. 예를 들어 '디바이디드 바이 쓰리'의 의미는 저와 드러머의 릭 메이, 그리고 베이스인 칼 군터의 
3명이 이 곡에 인풋을 했다라는 의미이죠.
그리고 "댄스 오브 더 몬스터 고즈"는 UFO에 관한 곡. 나는 UFO를 믿고 있어, 죽기 전에 한번 외계인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해(웃음).
 대부분은 완성된 곡을 듣고 나서 그 분위기와 느낌을 느끼고 타이틀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YG : 이번에도 드럼 이외는 거의 당신이 모든 연주를 하고 있지만, 레코딩의 순서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가?
RJ : 집에 작은 홈 스튜디오가 있고 A-DAT 레코더가 있죠. 그래서 먼저 릭 메이나 존 호먼에게 드럼 파트를 녹음 해달라고 하였고,

YG : 드러머이기한 존은 매앨범마다 1~2곡밖에 드럼을 연주하고 있지않는데, 왜 그에게 전곡 부탁하지 않나?
RJ : 존은 멋진 투베이스 드러머인데, 밴드였기 때문에 밴드의 라이브에서 상당히 바빠서 이번에는 1곡밖에 부탁하지 않았다.
그보다 학생 시절의 친구인 릭이 때때로 그에게 연주를 부탁했다 존도 릭도 모두 드러머로서 좋아하지만.

YG : 작곡은모두 7 현 기타를 사용하여 했습니까?
RJ : 맞아. '96년 3월에 일본의 그레코와 연락을 취했는데, 그들이 나를 위해서  기타를 만들어 준다고 하게 되어.
다만, 손에 넣었을 무렵에는 레코딩이 거의 끝나고 있었고, 신작에서는 아이바니즈의 7현 기타를 사용했어.
그러나 그레코의 7 현 기타는 정말 훌륭해. 6현 기타는 이미 연주하는방법을 잊어버렸다(웃음). 7 현 기타가 더 많은 것이 가능하고 재미가 있기 때문에.

YG : 7 현 기타는 리프 플레이에서 다양하게 바뀔 수 있지만 솔로 플레이에서 잘 활용하는 사람은 적지 않습니까?
RJ : 확실히 리듬 플레이에 관해서는, 보다 깊이 있는 사운드나 코드를 만들 수 있지만 솔로나 멜로디 플레이에 관해서는 보다 테크닉적으로 될 수 있다.
"현이 많은 만큼 옥타브가 넓어지고, 더 긴 프레이즈를 만들 수 있으니까. 처음만지고 나서  3~4년이 되지만,
처음에는 익숙해질 때까지 1개월 정도 걸렸어. 지금은 8현 기타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지만(웃음).


YG : 조지 린치는 이전 높은 현을 늘린 7 현 기타를 실험적으로 시도했지만 ...
RJ : 아, 그가 그렇게 하고 있었던 걸 알고 있어. 나는 7현 기타를 5개 가지고 있는데, 그 중 1개는 똑같이 하이 A현이 더해 있다.
그렇지만, 로우 B현을 더한 7현 기타가 좋아하는 거야. 말하자면,
새들백 샤크는 지난해 도켄의 오프닝을 맡았다. 그래서 조지와 알게 되었는데, 그에게는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기뻤어.

YG : 그레코의 7 현 기타 픽업은 디마지오의 BLAZEII?
RJ: 그래. 디마지오와는 엔드스먼트 계약이 되었고, 스티브 브루처에 부탁해 7 현용 픽업을 일본에서 보내 주었다.


YG : "투란센덴 투르"는 중간 부분에서 YES와 Rush와 같은 프로그레시브적 밴드의 영향을 느낍니다.
RJ : 그래, 나는 러쉬의 큰 팬이야. 이번은 전작보다 프로그레시브한 사운드가 되어 있다고 생각해. 내가 가진 다른 면을 내고 싶었으니까 의식적으로 그랬지만.
난는 드림씨어터이나 페이츠 워닝과 같은 프로그레시브 하드 록 밴드도 정말 좋아해. 그래서 이 곡에는, 러쉬나 드림·시어터와 같은 클린·톤·기타나 템포·체인지,
테크닉적인  부분이 포함되어 있어. 이 곡의 미들 솔로는 스트링 스키핑과 태핑이 가득하며 앨범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솔로야.
일본의 기타 팬들도 분명 마음에 드는 게 아닐까. 일본에서는 프로그레시브 밴드도 인기가 있겠지? 미국에서는 아직도 얼터너티브 전성기 느낌이니까.

YG : 하지만 최근 슈라프넬이 다시 네오 클래식 한 기타리스트를 데뷔 시켰고, 아메리카도 이제 얼터너티브 세력이 쇠퇴해 오고 있지 않니?
RJ: 이전과 비교하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기쁘지만・・・. 나는 네오·클래시컬계의 사운드도 좋아해.

YG : 당신의 친구이기도 한 론달과  데릭 테일러 (Drek Taylor)는 얼터너티브 색상의 강한 앨범을 발표했지만 어떻게 생각해?
RJ : 두 사람 모두 매우 뛰어난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하고, 독창성이 있지. 그들이 그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한다면 문제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 개인으로서는 더 헤비로 프로그레시브인 음악이 좋아하지만.
얼터너티브계의 기타 플레이는 굉장히 지루해 보여. 리듬 기타로 해도 4개 정도밖에 코드가 나오지 않고, 재미가 없다. 하모니도 아무것도 있었던 것이 아니고.


YG : 테크닉 측면에 관한 것이지만, 이번에는 스트링 스키핑에 의한 아르페지오 플레이가 주체가되고있는 것 같네요?
RJ: 맞아. 스트링 스키핑에 관련된 즈풍은 폴 길버트와 앨런 홀스워스에 큰 영향을 받았어. 그렇다면 '90년대에 맞는 보다 수준 높은 스트링 스키핑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난는 심포니 엑스의 마이클 로메오와도 친구이지만, 그와는 잘 전화로 이야기하고 스트링 스키핑의 릭을 교환하기도 하고 있다. 그런 다음 아르페지오의 경우 스윕 피킹도 자주 사용해.


YG : 그런 플레이는 자연스럽게 나오나요?
RJ : 코드 체인지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는 미리 어레인지해 두는 경우도 있고 하지만 대부분은 인프로바이즈야.


YG : "그루브 인 어빗"의 재즈 스타일의 부분은 미리 어레인지 한 플레이?
RJ : 그 부분은 그렇지. 칼이 굉장한 낡은 업라이트 베이스를 가지고 있어, 내 스튜디오에서 그 워킹 베이스 라인을 연주해주었어. 그리고 나는 클린 톤으로 약간의 재즈풍의 플레이를 해 보았지.
나는 옛날 재즈 기타리스트로부터 레슨을 받고 있었던 적이 있으니까.


YG : 보너스 트랙의 '이그지라 레이션'과 '세븐 스트링 리트릭'은 처음부터 일본을 위해 썼습니까?
RJ: 맞아. 일본 팬들로부터 많은 팬 레터를 받았기 때문에 그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 이 2곡은 올해 2월에 만들어 녹음했어.
그러고 보니 지금 주목하고 있는 기타리스트는 일본인이다. FEEL SO BAD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쿠라타 후유키)인데, 그는 굉장한 기타 플레이어이군요. 언젠가 공연하고 싶어.


YG : 이번 앨범에서 사용한 앰프와 이펙트를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RJ : 기타 솔로에서는 ADA의 프리 앰프 MP와 스피커 에뮬레이터의 ADA MICRO CAB를 사용하여 리듬 트랙에는 메사 부기의 듀얼 렉티파이어를 사용했고.
그런 다음 록트론의 VOODU VALVE를 사려고해. 이펙트는 리버브와 딜레이에 아레시스의 MIDIVERB3와 MIDIVERB4를 사용했지.
그리고 디지텍의 워미 페달과 VOX의 와우 페달도 사용했어요. 기타 신디사이져는 롤랜드.

YG : 와미 페달은 '투란 센덴 투르', '그루브스 인 어빗', '댄스 오브 더 몬스터 갓'에서 사용하고 있습니까?
RJ: 그건 바로. 그루브스 인 어빗의 엔딩 부분에서는 와미 페달에서 두 명의 외계인이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를 내고 싶었다.

YG : 향후 예정은?
RJ: 10월에 일본에서 열리는 악기 페어에 갈 예정이다. 지금부터 굉장히 기다려. 나는 꼭 일본에서 기타 클리닉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앨범의 노래 만들기를 시작하거나,
새들백 샤크의 라이브를 하거나 할 예정이다. 새들백 샤크는 앨범을 1장 출시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수입판밖에 손에 넣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라벨을 찾고 있는 곳이야. 그리고 아까도 말했듯이, 다음 솔로 앨범에는 보컬을 넣어보고 싶다. 드림 극장이나 페이츠 워닝과 같은 가수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YG: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RJ : 이번 앨범은 어쨌든 일본 기타 팬들이 절대적으로 좋아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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